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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자동화 시대, 『거대한 전환』의 의미, 칼 폴라니

by jian80 2025. 3. 3.

거대한 전환 책 표지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챗봇, 로봇 공학 등 과거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술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44년 출간된 이 고전은 산업혁명 시대 시장경제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분석했는데, 오늘날 AI와 자동화로 인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유용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폴라니의 '이중 운동'과 AI 시대의 사회적 보호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제시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입니다. 이는 시장 경제의 확장과 그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자유시장이 확장되면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곤경에 처했고, 이에 대응하여 노동조합, 사회보장제도, 노동법 등 다양한 사회적 보호 장치가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AI와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시장 확장을 가져오고 있으며, 이에 따른 사회적 보호 메커니즘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 보편적 기본소득(UBI)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 AI 윤리 가이드라인과 규제 프레임워크가 전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 디지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폴라니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AI와 자동화에 의한 시장 확장에 대응하는 사회의 자연스러운 자기보호 반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 운동의 균형이 AI 시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이 될 것입니다.

가상의 상품과 AI 노동

폴라니는 토지, 노동, 화폐를 '가상의 상품(fictitious commodities)'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본래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이 아니지만, 시장경제에서는 상품처럼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가상의 상품을 진짜 상품처럼 취급하는 것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다고 경고했습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가상의 상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 개인 데이터: 우리의 가장 사적인 정보가 AI 훈련을 위한 원료로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 AI 노동: 인간의 지식노동이 AI 시스템으로 대체되면서, 창의성과 지성까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 디지털 공유재: 인터넷과 같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할 디지털 공유재가 사유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가상의 상품들이 무분별하게 시장화될 경우, 폴라니가 경고했던 것처럼 심각한 사회적 파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와 데이터의 사용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할 때입니다.

탈상품화와 AI 기술의 민주화

폴라니는 시장 논리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며, 시장이 사회에 '착근(embedded)'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경제가 사회적 관계와 가치 속에 통합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AI 시대에 이러한 '착근'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 공공 AI 인프라: 핵심 AI 기술과 인프라를 공공재로 취급하여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 협동조합형 AI: 사용자와 개발자가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는 협동조합형 AI 모델을 개발합니다
  • 지역사회 중심 자동화: 자동화 기술을 지역사회의 필요와 가치에 맞게 적용합니다

최근 오픈소스 AI 모델의 발전과 AI 민주화 운동은 폴라니가 말하는 '탈상품화'와 '착근'의 현대적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순전히 이윤 추구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결합될 때 더 큰 혜택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새로운 '거대한 전환'을 위한 사회적 비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80년 전에 쓰여졌지만, AI와 자동화 시대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적절한 이론적 틀을 제공합니다. 폴라니가 분석했던 19세기의 '거대한 전환'이 산업화와 시장경제의 확장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AI와 자동화로 인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새로운 전환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집단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폴라니의 통찰을 따른다면, AI와 자동화 기술은 단순히 효율성과 이윤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사용되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판 '거대한 전환'이 단순히 기술적 혁명이 아니라, 보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폴라니의 지혜를 되새겨볼 때입니다.

 

때로는 과거의 지혜가 미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